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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복 70년 한국인 의식주 변천사] 치마 길이의 변화 - 갈수록 짧아지는 미니스커트…여성 노출 욕망을 누가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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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복지일보 장영기 기자]방송에서 걸 그룹 공연 때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 치마 길이가 짧아도 너무 짧아졌어. 가수의 노래를 들어야 하는데, 다리를 쳐다볼 때가 더 많으니 어쩌면 좋아. 탤런트 이순재 씨도 한때 ‘야동 순재’로 주목받았으니까 이런 구보 씨 마음도 이해해주셔. 그래서 치마 길이가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이야기해볼게.

 

“눈 둘 곳 없는 아찔한 치마 길이.” 이런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많이 봤을 거야. 하지만 조선시대 풍속화나 중세 서양의 그림엔 치마의 바닥 지름이 2, 3m나 되는 광폭 치마가 많이 등장해. 치맛단에 가려 신발이 안 보일 정도지.

 

자전거도 처음엔 앞바퀴가 뒷바퀴보다 훨씬 컸는데, 치마 입은 여성들을 위해 지금처럼 변형시킨 거야. 치마 길이는 미니(짧은 치마), 미디(종아리 중간 길이 치마), 맥시(발목 길이 치마)로 크게 나뉘는데, 체형에 따라 어울리는 치마가 따로 있지. 그런데도 요즘은 다들 짧은 것만 입으려고 해.

 



혜원 신육복의 ‘미인도’(간송미술관). 여러 벌의 속옷을 껴입어 잔뜩 부풀린 치마와 젖가슴이 드러날 만큼 짧은 저고리는 18세기 말부터 유행한 조선시대 여성 옷차림이었다.(사진=간송미술관)

‘하후상박(下厚上薄)’이라는 말 많이 들었을 거야. 아랫사람에게 더 후하게 주고 윗사람은 덜 받는 쪽으로 연봉을 조정했다고 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잖아. 원래는 조선 후기에 유행한 ‘하후상박’ 패션 스타일을 설명할 때 자주 썼어.

 

몸에 꼭 맞는 짧은 저고리와 넉넉하게 부풀린 치마 입은 여인을 그린 신윤복의 ‘미인도’를 떠올려봐. 여러 벌의 속옷을 껴입어 잔뜩 부풀린 치마(하후)와 젖가슴이 드러날 만큼 짧은 저고리(상박)는 18세기부터 개화기까지 유행한 우리나라 여성의 옷차림이었어. 광복 직후엔 개량 한복이나 일명 몸뻬(여자들이 일할 때 입는 일본식 바지. 일 바지)가 여성의 일상복이었고, 1950년대 말엔 맘보바지가 크게 유행했지.

 

“말세다, 말세야. 아랫도리를 벗고 다니네.” 혀를 끌끌 차며 한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선연해. 1967년 미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가수 윤복희 씨의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은 충격적이었지. 미니스커트 열풍이 전국을 휩쓸자 언론에서는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찬반 토론을 벌이기도 했어. 최신 유행이냐, 풍기 문란이냐를 놓고 국론이 양분된 거야.

 

미국 경제학자 마브리는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면 주가가 오른다는 ‘치마 길이 이론(Skirt-Length Theory)’을 제시했는데, 실제로 호황이던 1920년대엔 무릎 길이의 치마가 유행했고, 1930년대 세계 대공황 시기엔 치마 길이가 길어졌다는 거야. 미니스커트가 유행한 1960년대에도 경제가 성장하고 주가가 올랐으니 단순히 속설이라고만 치부하려 해도 좀 뭐하네.

 

1973년에 경범죄 처벌법이 생겨 무릎 위 15㎝가 ‘저속한 옷차림’의 커트라인이 되면서 미니스커트를 단속했어. “미니스커트 첫 구류(拘留). 천안경찰서는 26일 개정 경범죄 처벌법 발효 이후 미니스커트를 입고 길을 가던 박 모(22) 양을 즉결에 넘겨 2일간 구류 처분을 받게 했다.”(1973년4월 28일자 동아일보). 경찰이 대나무 자를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 여성의 치마길이를 직접 재는 진풍경이 여기저기서 벌어졌지.

 

더 짧아 보이고 싶었던 여성들은 미니스커트 밑단에 살색 옷감을 덧대 단속에 걸리지 않으면서 착시 현상으로 짧게 보이게 하는 방법으로 꿈을 이뤘어. 그때 살색 천을 댄 치마입은 여자들을 생각하면 웃을 수밖에. 엄격한 아버지에게 혼쭐날까 두려워 집에서부터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고 가방에 넣어 나갔다가 빵집 화장실 같은 데서 갈아입은 여대생들도 많았어.

 

‘저속한 옷차림’ 조항은 점점 사문화됐지만 1988년 말까지 존속했어. 경찰이 치마 길이를 재며 조금만 시선을 달리해도 요즘 기준으론 성희롱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엔 어떻게 자로 쟀는지 모르겠어.

미니스커트 입었다고 경찰이 단속…‘은폐는 또 다른 노출’ 헤아려봤으면



미니스커트를 입고 길을 가던 여성이 구류 처분을 받았다는 기사를 전한 1973년 4월 28일자 동아일보.

1970년대를 지나오며 치마 길이는 점점 더 짧아졌지. 1973년에 가수 김세환이 부른 ‘토요일 밤에’가 꽤 히트했는데, 그 노래는 아예 “긴머리에 짧은 치마~ 아름다운 그녀를 보면~”이라는 가사로 시작해. 1980년대 후반엔 잠시 긴 치마가 유행했는데, 그러고 보면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 2000년대 들어서는 중고생의 치마 까지도 너무 짧아졌어.

 

2009년이었나? KBS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이 초미니 교복을 입고 나왔잖아. 학생들은 열광했고 교복 치마길이도 덩달아 짧아졌으니, 다 매스컴의 영향이지. 구보 씨가 중고생 때는 더 자랄 것에 대비해 다들 한 치수 넉넉한 교복을 샀어. 몸에 꼭 맞게 입는 요즘 중고생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스커트는 갈수록 짧아져 초미니와 마이크로미니를 지나, 이제 ‘나노(nano : 10억 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 미니’까지 등장했다고 해. 왜 여성들은 미니스커트에 열광하는 걸까. 패션 심리학자 제임스 레버는 <서양 패션의 역사>에서 패션의 변천 배경을 ‘성감대의 이동’으로 설명했어.

 

1930년대엔 엉덩이, 1940년대는 허리와 가슴, 1950년 대엔 다시 엉덩이가 성감대가 됐는데, 1960년대엔 맨살이 성감대로 떠오르면서 가장 쉽게 살을 드러낼 수 있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다고 주장했어. 믿거나 말거나지 뭐.

어쨌든 살을 드러내고 싶은 여성의 욕망은 아무도 못 말려. 오죽했으면 춘향이도 그네를 뛰며 ‘박속같은 살결’을 보여줬겠어? <춘향전>에선 방자의 입을 통해 춘향이 그네 뛰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해.

 

“이곳에 추천(革秋韆 : 그네)을 매고 네가 뛸 제(뛸 때), 외씨(오이 씨)같은 두 발길로 백운 간(白雲間 : 흰 구름 사이)에 노닐 적에 홍상(紅裳 : 붉은 치마)이 펄펄, 백방사(白紡絲 : 흰 누에고치에서 켜낸 실만으로 짠 명주) 속곳가래(속옷 가랑이) 동남풍(東南風)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백운 간에 희뜩희뜩(갑자기 몸을 뒤로 젖히며 자빠지는 모양).”

 

정숙한 여인 성춘향은 그네라는 놀이기구를 빙자해 자연스럽게 살을 희뜩희뜩 보여주며 이몽룡을 꼬인 거지.

우리나라 전통 의복은 최대한 신체를 감추는 쪽으로 디자인됐어. 증조할머니나 할머니들은 다리속곳, 속속곳, 속바지, 단속곳, 무족치마, 대슘치마(조선시대 궁중에서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를 입고 나서야 비로소 겉치마를 둘러 입었다고 해.

 

여성들이 몸을 가리는 데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어. 어떻게 옷을 입든 자유라고 하지만 더 이상 짧아지면 안 되지. ‘은폐는 또 다른 노출’이라는 말뜻을 젊은이들이 깊이 헤아려봤으면 해. 벗는 것보다는 입는 것이 아름다우니까.



걸 그룹은 노래도, 노출도 화제다. 파격적 의상을 선보였던 걸그룹 달샤벳.(사진=해피페이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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