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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 울려퍼진 유엔참전용사의 아리랑…폭염도 막지 못한 전우애 - ‘유엔군 참전의 날·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참전용사들 - 유엔참전용사·후손 등, 유엔기념공원 참배…“항상 기억해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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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복지일보 김경훈 기자]지난 27일 저녁 ‘피란의 수도’ 부산에서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70여 년 전 이국 땅에서 전쟁 속으로 뛰어들었던 세계 각국의 청년 군인들이 이제 노병이 되어 다시 찾은 대한민국에서 부른 ‘어메이징 아리랑’이었다.


아리랑 공연은 이날 부산에서 열린 ‘유엔군 참전의 날 및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의 하이라이트였다. 행사에 참석한 유엔참전용사들은 전광판 속 한글의 영어식 읽기 표기로 된 아리랑 가사를 읊으며 나지막히 함께 불렀고, 모든 참석자들이 감동했다.


국가보훈부는 유엔군참전의 날 및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기념해 24일부터 29일까지 5박 6일간의 일정으로 유엔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여 명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재방한 행사’를 진행했다.


처참한 상흔만이 남아있었던 70여년 전, 많은 한국인들이 쉴새 없이 흥얼거렸던 아리랑을 따라부르며 익히게 된 유엔참전용사들은 낯선 나라였으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신념 하나로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볐다.


미국, 영국, 캐나다, 튀르키예, 호주 등 총 22개국에서 약 200만 명(연인원)에 이르는 유엔군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포화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한국을 다시 찾은 유엔참전용사들은 이 나라의 눈부신 사회·경제·문화적 발전과 커다란 환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재방한 행사’ 일정 중 27일 본격적인 기념식 행사를 앞두고 유엔기념공원과 롯데호텔 부산에서 유엔참전용사와 후손 등을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 27일 롯데호텔 부산에서 유엔참전용사 4인 합동 인터뷰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호주 참전용사 로널드 워커, 캐나다 참전용사 윌리엄 로버트슨, 영국 참전용사 리차드 카터, 미국 참전용사 도널드 리드. (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이것은 기적이다. 정말 ‘원더풀’하다”


27일 롯데호텔 부산에서 진행된 유엔참전용사 4인 합동인터뷰에서 이처럼 가장 먼저 소감을 전한 미국인 유엔참전용사 도널드 리드 씨는 72년 전인 1951년 8월 18살의 나이에 해병대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19살때까지 1년간 전방에서 벌어진 전투 3개에 참여했는데, 특히 미 제1해병사단과 국군 해병 제1연대가 1951년 8월 31일부터 9월 20일까지 펀치볼(해안분지)을 공격해 확보한 전투인 ‘펀치볼 전투’에도 참전했다.


이같은 한국과의 인연 덕분이었을까, 리드 씨는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한국인 여성과 인연이 닿아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1951년 9월 한국을 떠날 때 한국 땅은 굉장히 황폐했고 절대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이후 굉장한 발전을 이뤄냈다”며 “한국인들의 마음과 정신력 때문에 이런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국 성공의 원동력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재의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 대해 “6·25전쟁을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 북한 사람들이 굶주림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할지 안다. 북한도 어서 평화를 찾아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며 “통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화를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을 포함해 한국을 10번 째 방문한 리드 씨는 “올때마다 이런 환대를 받는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면서 “이렇게까지 참전용사에게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한국의 너그러움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보여준 커다란 환대, 결코 잊지 못할 것”


일본에서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부산에 도착해 참전했다는 영국인 참전용사 리차드 카터 씨는 전쟁 당시 임진각 근처에 배정받은 자신의 임무를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길을 순찰하고 부대원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 또 임진각 뒤에 있는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며 “중공군이 내려오는지 두 개의 다리를 계속 감시했어야 했는데 다행히도 폭격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6·25전쟁 참전 당시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져온 카터 씨는 “이게 부산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사진 한 장, 한 장을 소개했다.


1953년 부산에 도착했을 당시 트럭으로 이동하는 도중 촬영한 외곽지의 한 장면, 14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가막산 인근의 부대 내 군 텐트가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게 설치돼 있는 장면, 적군 침입시 폭파해야했던 두개의 다리 모습이었다.


1954년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 한국을 방문한 그는 “모두 한국에서 이룬 이같은 발전을 다른 사람들도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이런 성공은 결국 통일로 이뤄져야 한다”고 통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한국의 발전과 성장에 대해 연신 놀라움을 표한 카터 씨는 “유엔 참전국의 대표로서 한마디를 하자면, 이번 행사가 굉장히 잘 준비되어 있어 감사하다”면서 “한국이 보여준 커다란 환대, 결코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발전 믿을 수 없어…굉장히 기쁘다”


이번 재방한 행사로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호주인 참전용사 로널드 워커 씨는 1953년 왕립호주 제2대대 상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을 찾은 그해 9월, 그는 6.25전쟁의 대표적 격전지 중 하나로 꼽히는 후크고지 전투 등 전투에 투입돼 전장을 누볐다.


후크고지 전투는 휴전협정이 이뤄지기 전까지 미국과 영연방군이 4차례에 걸친 중공군과의 격전 끝에 임진강 북단의 연천군 장남면, 백학면, 미산면, 왕징면 일대를 대한민국 영토로 귀속시킨 전투다. 후크고지란 이름은 격전지가 벌어졌던 지형이 후크(hook) 모양으로 생겼다는 이유로 붙여졌다.


워커 씨는 “전투 당시 미국군의 왼쪽 옆에서 방어하는 것이 임무였다”며 “평화협정이 맺어진 이후에도 감시를 풀지 않고 언제든 진격할 준비를 했었다”고 당시 맡았던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성공을 이룬 요소에 대해서는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한국의 재건에 참여했던 것, 다른 나라들이 이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한다”며 “정말 훌륭하고 믿을 수 없다. 이러한 발전을 보게 된 것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전쟁 당시 군인들을 도왔던 조적성, 김진태, 김일송이라는 이름으로 추정되는 세 인물을 언급하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전우 묘비 찾은 유엔참전용사들…“항상 기억해줘 감사”


이날 합동인터뷰에 참석한 이들을 비롯한 유엔참전용사 60여 명은 오전 6·25전쟁 희생자 11개국 2300여 명의 유해를 모신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했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폭염을 뚫고 참배에 함께한 워커 씨는 유엔기념공원에 대해 “잘 정비돼 있어 굉장히 놀랐다. 한국은 이런 유엔 묘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할 것”이라며 “유엔 병사들을 항상 기억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홍콩에 주둔했다가 한국으로 넘어와 6·25전쟁에 참전했던 캐나다인 참전용사 윌리엄 로버트슨 씨는 전쟁 당시 친하게 지냈던 전우의 묘비에 캐나다 보훈의 상징인 ‘포피(Poppy)’ 모양의 뱃지를 올려뒀다.


‘쓰러진 병사’라는 꽃말을 가진 포피는 로버트슨 씨의 캐나다 고향마을에 사는 10살 소년 ‘키오’가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정말 아름다운 세레머니였다”며 “이런 좋은 기회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 27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유엔참전용사가 전우의 묘를 찾아 경례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참전용사 후손, “아버지, 다시 참전할 것이라 말해”


유엔기념공원 참배는 들끓는 무더위 속에서도 전우를 찾은 참전용사들의 의지 덕분에 오전 내내 진행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인 유엔참전용사 이반 홀사우센의 아들인 케이스는 이번 재방한 행사로 한국을 찾게 돼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서 6·25전쟁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듣고 사진도 보았다”며 “아버지는 파일럿으로 참전했는데, 당시 전쟁의 긴장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곤 하셨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은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는데, 그때 아버지의 나이는 겨우 22살이었다”며 “아버지는 약 75개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한국 사람들은 유엔군의 희생에 대해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아버지는 오래 전, 다른 인터뷰에서 다시 또 참전하겠다고도 말하셨다”고 아버지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전하기도 했다.


튀르키예 유명 크리에이터, 보훈부 초청으로 참석…“엄청난 경험”


이날 튀르키예 유엔참전용사들을 대신해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있는 튀르키예 유엔참전용사들에 헌화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루히 씨는 보훈부 초청으로 이번 재방한 행사에 함께 했다.


1421만여 명의 구독자 수를 보유한 유튜버이자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루히 씨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색적인 곳을 방문하거나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한 영상 콘텐츠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특히 한국어, 영어를 포함한 14개 언어의 자막과 더빙도 제공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 참전용사들이 22~23세였는데, 젊은 나이에 열망을 뒤로 한 채 헌신했다”며 삶에 대한 꿈과 욕심을 모두 뒤로 한 채 참전해야 했던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대한 안타까움과 예우를 표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람들과 튀르키예 사람들 간의 어떤 연결성을 느낀다. 전쟁과 역사에 대해 구독자들이 알고 서로를 이해했으면 한다”며 “그때 당시의 이야기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전했다.


루히 씨와 함께 방한한 12만여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크리에이터 아흐멧 씨도 이에 대해 동감했다. 그는 “여기는 매우 감정을 자극한다. 묘역에서 내 이름과 같은 이름을 보았는데, 이 점은 나를 매우 다르게 느껴지게 한다”며 “참전용사들은 더욱 예우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아흐멧 씨는 “한국에 3일 정도 머무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됐지만, 한국 문화에 대해 더 잘 알고 싶다”며 “내 자신이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은 나에게 엄청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할아버지(참전용사)들이 생전에 한국을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고 전했다.


6·25전쟁 기간 4만 1000여 명의 유엔군이 전사하고 11만 명이 다치거나 포로가 되는 큰 희생이 있었다. 유엔군이라는 이름 아래 전 세계 청년들이 인생의 가장 꽃다운 나이에 자신의 젊음과 꿈을 뒤로 한 채 낯선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장을 누벼야 했다.


7월 27일은 이같은 유엔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는 법정기념일,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매년 돌아오는 7월 27일,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과 헌신한 그들에 대한 진심어린 경의를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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